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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50 년대: 좀비영화의 기원

좀비의 개념은 여타의 호러영화 소재와는 달리 주로 영화를 통해 정립됐다. 이는 좀비가 영미권에 소개된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좀비'(zombie)라는 단어는 1819년 처음으로 옥스퍼드 사전에 게재됐지만 영어권에서 좀비가 제대로 언급된 것은 잡지 <하퍼스 바자>에 실린 '되돌아온 인간의 나라'라는 라프카디오 히어른의 1889년 기사에서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좀비를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이 발간됐고 비로소 미국의 대중문화에 좀비라는 개념이 소개됐다.

 

이러한 좀비의 존재와 개념이 대중에게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빅터 핼퍼린의 <화이트 좀비 White Zombie>(1932)부터다. 이후 좀비는 문학이나 영화 등의 소재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화이트 좀비>에 나타난 좀비의 이미지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좀비의 그것과는 다르다. 카리브해 연안 아이티 지역의 좀비 전설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는 <화이트 좀비>의 좀비들은 영혼을 상실하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영화에서 좀비들의 일부는 단체로 인간을 공격하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영화 속 공포의 초점은 좀비 자체라기보다는 벨라 루고시의 악마성이다.

 

 

 

 

 

 

 

 

 

 

 

 

 

 

 

 

 

Halperin Bros., <The White Zombie>(1932)

 

 

이처럼 영혼을 잃은 사람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좀비 영화들은 <화이트 좀비> 이후에도 계속 제작되었다. 빅터 핼퍼린이 <화이트 좀비>의 후속편으로 만들어낸 <좀비들의 반란 Revolt of the Zombies>(1936)은 캄보디아에서 좀비 마법을 이용해 시체 군대를 조성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 프랑스 식민지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호러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1940년대에는 자크 투르네르 감독이 좀비의 저주를 뛰어난 극적 구성으로 풀어낸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I Walked with a Zombie>(1943)가 나왔고, <고스트 브레이커스 Ghost Breakers>(1940)는 좀비를 영화의 소재로 활용한 코미디 영화다.

 

<나는 좀비와 걸었다> 중반에 나오는 부두교의 집회 장면이나 결말 부분에서 좀비가 된 제시카 홀랜드를 데리고 가기 위해 홀랜드 농장에 찾아오는 부두교 좀비를 보여줄 때, 투르네르는 영과 음향을 빼어나게 조율한 연출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영화는 독특한 영화적 분위기와 카리브해의 어두운 모습, 그리고 무겁게 채색된 로맨스 등으로 『제인 에어』의 호러버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편으로 미치광이 과학자가 좀비를 창조해낸다는 설정의 <좀비들의 왕 King of the Zombies>(1941)과 독일 나치가 좀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의 <좀비들의 복수 Revenge of the Zombies>(1943)와 같은 영화들은 『프랑켄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까지 좀비 발생의 주원인은 부두교적 제의로 묘사되었으며 좀비라는 존재는 수동적인 도구나 희생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전형적이으로 비치는) 좀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존 길링의 <좀비의 역병 The Plague of the Zombies>(1966)의 경우, 부두교 때문에 좀비가 된 사람들이 광산에서 노동 착취를 당한다는 점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난다'는 설정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George A. Romero, <Night of the Living Dead>(1968)

 

 

조지 A.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는 시체들이 살아나 인간들을 먹는다는 설정을 통해 고어적 요소를 좀비 영화에 도입했다. 또한 이전의 좀비 영화들이 주로 다뤘던 좀비 발생 원인과 그를 해결하는 과정보다 좀비로 인한 집단 살육과 그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이후 좀비로 인해 일어나는 상황에 더 많은 비중을 둔 영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에도 저주나 마법 같은 것들이 좀비 발생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미국 영화보다는 유럽(특히 카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0년대부터 80년대는 헐리우드 호러영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좀비영화가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3부작을 기반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시체 3부작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1978), <시체들의 날 Day of the Dead>(1985) 세 편을 지칭하는 것으로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약 15년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이 세 편이 모두 사회 풍자적으로 해석되어서인지 1980년대에 만들어진 여타 좀비 영화들에서도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불안이 징후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지금 우리에게, 좀비는

 

 

 

 

 

 

 

 

 

 

좀비는 카리브해 서인도제도, 아이티 섬의 부두교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죽었다가 부두교 주술사의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를 일컫는 말이다.

1932년부터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좀비는 이후 꾸준히 그 모습과 행동이 변화해 왔다.

어떻게? 왜? 그리고 지금의 좀비 영화는?

윌리엄 시브룩(William Seabrook) 의 소설 『마술의 섬 The Magic Island』(1929)이 출간되면서 미국사회에서 좀비가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영화는 아니지만 좀비영화의 시초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읽어볼만한 소설.

좀비 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소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1954)가 있었다. 스티븐 킹과 조지 A. 로메로가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사실. 이 소설은 <지상 최후의 사나이 The Last Man on Earth>(1964), <오메가 맨 The Omega Man>(1971), <나는 전설이다>(2007)로 여러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동명의 영화와는 내용과 결말이 다르다. 한글 번역판도 있으니 좀비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화이트 좀비>(1932)는 빅터 핼퍼린과 에드워드 핼퍼린 형제가 제작한 독립 공포 영화다. 윌리엄 시브룩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악한 부두교주에 의해 젊은 여성이 좀비로 변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드라큐라 역으로 스타가 된 벨라 루고시가 좀비 마스터이자 악당으로 등장한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은 이미 좀비 영화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온전한 형태의 좀비가 처음으로 등장한 영화는 <화이트 좀비>로 간주된다. 1936년에는 속편인 <좀비들의 반란>이 제작되기도 했다. 개봉 당시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삼부작'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좀비영화로 회자되는 조지 A.로메로 감독의 시체 3부작의 시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위에서 언급한 소설 『나는 전설이다』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는 본격적으로 살점을 뜯어먹는 좀비가 등장하는데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물론, 인간의 이기주의, 인종차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풍자까지 곁들여지면서, 사람들은 좀비영화를 시대적 맥락속에서 정치풍자가 담겨진 영화로 읽기 시작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영화에 ‘좀비’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작 영화에서 좀비는  식인귀라는 의미를 가진 ‘구울(ghoul)’이라는 단어로 명명되었지만, 관객들게겐 좀비영화로 불린 것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좀비 영화의 형식을 고착시켰고, 좀비 호러영화에서 잔혹성과의 연계를 강화시킨 대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체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시체들의 새벽>에서 조지 A. 로메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녹여낸다. 흐물흐물한 손을 앞으로 뻗은 채 음악에 맞추어 덜렁거리며 걷고, 쇼핑몰의 상품들을 원하는대로 다 가져가버리는 좀비들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자본주의적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에 대해 자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이후 잭 스나이더(Zack Snyder)에 의해 <새벽의 저주 Dawn of the Dead>(2004)로 리메이크 된다. 

 

흥행에 성공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시체들의 새벽>에 이어 만들어진 <시체들의 날>은 개봉 당시에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수위만 높아졌을 뿐 사회 풍자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도 않고 기존의 작품들에서 발전된 부분도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지 A. 로메로 감독 본인이 시체 삼부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전편들에서와는 달리 인간성을 회복하고 있는 좀비를 보여준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로건 박사가 길들인 밥이라는 좀비다. 밥은 로건 박사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약간의 지성이 있으며 짧은 의사소통 또한 가능하다. 심지어 그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인간들은 인간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자비하고 잔혹한 군인 로즈는 로건을 살해하고, 민간인과 비인간적으로 대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나 인간에게 요구되는 필요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 2014 by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the Arts. Trans-screen workshop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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