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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cker
 
 
Aspect Ratio
 

4:3 화면비는 흑백무성영화 시기의 표준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영화라면 통통한 네모인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웠을 게다. 텔레비전의 보급과 더불어 할리우드는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텔레비전이 보여줄 수 없는 스펙터클을 내세웠고 예전보다 가로로 긴 대형화면이 새로운 표준으로 제시되었다. 그 결과 1950년대에 이르면 4:3 화면비의 영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과거에 만들어진 4:3 화면비의 영화와 오늘날 간헐적으로 제작되는 4:3 화면비의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다르다. 전자는 그저 당대의 표준으로서 별다른 부가적인 의미를 띠지 않았던 반면 후자는 하나의 미학적 시도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최근에는 에릭 로메(1920-2010), 알렉산더 소쿠로프(1951- ), 구스 반 산트(1952- ), 자비에 돌란(1989- ) 등이 4:3 화면비를 채택해 작업한 바 있다.

 

오늘날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당대의 관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채플린이 처음으로 각본과 감독을 맡은 <A Night Out>(1915)에서 우리는 그가 4:3 화면비를 얼마나 능숙하게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4:3 화면비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당대의 관객에게 이러한 점은 거의 간파될 수 없었을 것이다.  

 

 

 

 

 

 

 

 

 

 

 

 

 

 

 

 

 

 

 

Charlie Chaplin, <A Night Out>(1915)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는 순간 화면비는 더 이상 의식되지 않게 된다. 영화평론가 케빈 B. 리(Kevin B. Lee)의 오디오비주얼 에세이 <Stillness in Motion: Lech Majewski's Motifs and Methods>(2012)는 레흐 마예프스키의 <The Roe's Room>(1997)과 <The Mill and the Cross>(2011)의 정적인 순간들을 바탕으로 4:3 및 1.85:1의 화면비의 영화를 병렬해 놓음으로써 마예브스키의 미장센과 그의 영화에서 운동이 정지한 순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케빈 B. 리의 오디오비중얼 에세이는 같은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서로 다른 화면비의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실제로 화면비가 미장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이다. 4:3 화면비로 촬영된 <The Roe's Room>에서, 마예프스키는 화면 내에 정사각형 모양의 문이나 창문과 같은 또 다른 프레임을 거듭 덧대곤 한다.

 

 

 

 

 

 

 

 

 

 

 

 

 

 

 

 

 

 

 

Kevin B. Lee, <Stillness in Motion: Lech Majewski's Motifs and Methods>(2012)

 

 

 

 

플리커(flicker)란 스크린에 필름이 영사될 때 발생하는 깜빡임 현상이다. 영사기는 필름의 프레임과 프레임이 전환되는 사이에 기계적으로 빛을 차단하는데  - 필름은 영사기 내에서 연속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프레임이 필름 게이트(film gate)에 정확히 물려 램프의 빛이 투과되는 순간 일시적으로 멈춘다 - 보통 초당 24프레임 속도로 영사되는 영화에서는 빛의 일시적 차단으로 인한 깜빡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의 디지털 영상에서는 이런 현상을 볼 수 없지만 오래된 필름의 느낌, 복고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런 플리커 현상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오스트리아 아방가르드 감독 피터 쿠벨카(Peter Kubelka, 1934.03.23~ )는 이런 플리커 효과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아르눌프 라이너 Arnulf Rainer>(1960)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적힌 몇 프레임을 제외하고는 흰색과 검은색의 프레임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과 검은색의 화면이 교차되며 플리커현상이 지속되는데  흰색과 검은색의 교차주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어느 순간 반복적 패턴에 적응하게 되고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의 유희를 즐기게 된다. 예컨대, 흰색 화면이 다소 오래 지속되면 검은 화면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서스펜스는 서사가 아니라 순전히 빛과 어둠의 교차, 그리고 그에 대한 관객의 경험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아르눌프 라이너>의 필름띠 앞의 피터 쿠벨카

 

 

플리커 효과는 디지털 시대에 미학적인 효과가 되었다. 여러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는 쉽게 이런 플리커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는데 이는 특수효과의 하나로 분류되어 있다. 오늘날의 대중 영화에서 플리커 현상을 자주 보게 되는 경우는 바로 공포영화나 스릴러영화에서이다.  공포영화에서는 긴장감이 극대화 되었을 때, 귀신이 나오기 바로 직전이나 위험한 상황 바로 직전에 반복적인 깜빡임을 활용하곤 한다. 화면과 화면 사이에 검은 화면이 빠른 주기로 삽입되면서 관객은 순간적으로 더욱 더 긴장하게 되고 깜빡이는 화면 다음에 나오게 될 화면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플리커 효과는 검은 화면을 통해 특정한 순간의 출현을 지연시킴으로서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로 공포영화나 스릴러 영화에 사용되곤 한다.

 

 예컨대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2010)에서는 테러리스트가 윤영화(하정우 분)의 귀에 폭탄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런 플리커 효과가 사용된다. "당신이 이미 폭탄을 차고 계시거든!"이라는 대사와 함께 윤영화의 표정과 귀에 찬 인이어이어폰(폭탄)을 클로즈업하는데 이 쇼트들 사이에 검은 화면이 삽입되어 분절적인 느낌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폭탄의 위협을 플리커 효과로 극대화 하였다.

 

 <줄리아의 눈 Julia's Eyes>(기옘 모랄레스, 2010)에서 살인자와 줄리아의 대치장면에서는 빛과 어둠이 반복된다. 암전된 방 안에서 살인자의 목에 걸린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면서 피사체들이 아주 잠깐씩만 보여지는데, 이때 살인자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도망가는 여성은 어디에 있는지 등의 정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보여진다. 여기서 검은 화면은 가시적인 것의 출현을 지연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장편 극영화로서의 최초의 컬러(천연색) 영화인 루벤 마물리언 감독의 <베키 샤프 Becky Sharp>(1935)가 등장하기 전 모든 영화는 흑백이었다. (물론 수작업으로 채색해 만든 컬러영화들이나 필름 프레임 전면을 단색으로 착색하는 '틴팅'(tinting), 그리고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전의 기술적 실험의 잠정적 결과물들이 있기는 했다.) 흑백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인물의 빛나는 피부색, 찬란한 자연의 색이 아니라 밝음과 어두움 그 두가지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컬러 영화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색이 주는 '현실성'에 사로잡혔고, 흑백영화는 점점 원래의 자리를 잃게 된다. 더이상 '영화=흑백'이라는 당연한 등식이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후로 수많은 영화들이 컬러로 만들어졌고 흑백영화가 하지 못했던 '색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분명 역행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영화제작 및 상영이 전면화된 오늘날 그 수명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필름과는 달리) 흑백영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요즘에도 드물지만 흑백영화가 제작되는 것을 보게 된다. 흑백영화의 어떤 느낌 때문에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빛(밝음과 어두움)이 주는 간결함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때?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아니면 특정 시대를 가리키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특징 때문에? 흑백을 선택한 영화는 저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근 봉준호 감독은 <마더>(2009)의 흑백 버전을 만들어냈다. 그에 앞서 코엔 형제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를 컬러와 흑백 버전으로 각각 만든 뒤 영화를 개봉한 바 있다. 완성된 영화에서 단순히 컬러를 빼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인 번거로움과 비용을 감수하며 이런 일을 감행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초기영화 시기에는 카메라맨이 수동으로 카메라를 작동했다. 카메라가 자동화된 이후 일반적으로 촬영 속도는 초당 16~20 프레임으로 정착되었다. 잔상효과(일련의 정지영상을 고속으로 움직일 때 하나의 움직이는 영상으로 간주하는 눈의 능력)가 발견된 것은 19세기인데, 사람의 눈에 잔상이 남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초당 16개 정도의 프레임이 나타나면 그것들이 연결되어 움직이는 동작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상황은 유성 영화의 출현과 함께 바뀌었다. 16프레임으로 재생되는 필름의 한쪽에 붙어있는 사운드 트랙은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들을만한 음성 정보를 필름에 담기 위해서는 최소한 24프레임 이상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16프레임과 24프레임, 두 가지가 혼용되는 과도기가 생긴다. 그리고 얼마 후 24프레임이 표준적인 촬영 속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24프레임의 촬영 속도가 표준이 된 이후 초당 16, 18, 20 프레임으로 촬영된 영화는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과거에는 16프레임으로 촬영된 필름을 16프레임의 속도로 보여주는 영사기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속도로 보였지만 24프레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부터 24프레임의 속도로 16프레임의 영화들을 영사하면 약 1.5초 정도 빠른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고전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이나 시네마테크 들에는 영사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영사기가 구비되어 있다.)

 

 

 

 

 

 

 

 

 

 

 

 

 

 

 

 

 

 

 

 

Guy Maddin, <The Heart of the World>(2000)

 

 

 

 

 

 

 

 

 

 

 

 

 

 

 

 

 

 

 

 

 

 

Robert J. Flaherty, <Nanook of the North>(1922)

 

 

위의 두 작품은 각각 초당 18프레임, 그리고 16프레임으로 촬영되었다. 가이 매딘의 <The Heart of the World>(2000)은 안나라는 과학자와 그녀가 사랑하는 두 남자(한 명은 장의사, 한 명은 예수를 연기하는 자)가 주인공으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00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감독 가이 매딘은 과다노출, 스크래치, 초당 18프레임의 촬영(영사는 초당 24프레임) 등을 이용해서 과거의 무성영화 같은 연출을 보여주었다. 192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다른 장치들도 있다. <북극의 나누크>(1922)는 초기 다큐멘터리 영화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초당 16프레임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매딘의 경우처럼 미학적인 선택이 아니라 당대의 영화촬영에 있어서 기본값(default value)이라 할 만한 것을 따른 것일 뿐이다. 초당 16프레임이라는 것은 '드러내야' 할 장치가 아니라 <북극의 나누크>의 '사실주의적' 인상을 위해 비가시적인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Black and White
Frame Rate

영화의 잔상(殘像)

 

 

영화는 기술 발전의 역사와 더불어 다양한 변화를 거쳐 왔다. 그 가운데 가장 현저한 변화는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급속한 전환이다. 영화 그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던 '필름'이라는 단어는 이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되었다. 필름의 물리적 취약성과 한계로 인해 생겼던 몇몇 효과들, 산업적인 이유에서 영화에 부과되었던 기준들은 오늘날에는 의미의 영도(zero degree)에서 벗어나 과거를 지시하는 기호 혹은 미적인 효과를 더하는 기호가 되었다. '필름의 시대' 초창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영화들과는 다른 화면비를 지니고 있었고 초당 프레임수도 달랐다. 당대에는 영화제작의 기본값(default value)이었던 것을 오늘날 활용하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미적인 선택이 된다. 필름이라는 물질의 한계로 인해 생겼던 플리커(flicker) 현상이나 스크래치(scracth), 그리고 색의 부재는 오늘날에는 마치 일종의 장식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영상 후반작업 프로그램은 그러한 '영화의 잔상'들을 '이펙트'(effect)로 제공하여 클릭 한번으로 얼마든지 표현 가능하게 만든다.

 

 

 

Scratch

스크래치는 필름 베이스 혹은 유제층이 긁혀 생기는 흠집이다. 네거티브 필름에서는 검은색으로 포지티브 필름에서는 흰색으로 나타난다. 카메라 자체, 현상 부주의, 영사기 등이 원인이 되어 스크래치가 발생하거나 혹은 직접 필름 위에 그려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래된 필름의 스크래치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경우 우리는 '과거임'을 드러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로 스크래치를 본다. 진 리오타(Jeanne Liotta)의 <What Makes Day and Night>(1998)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품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어떻게 낮과 밤이 생기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만 진 리오타는 1940년대에 제작된 학습용 영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생님과 아이 2명이 나오고, 그들은 지구본과 빛을 이용하여 지구의 자전에 따라 세계의 낮과 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보여준다. 먼저 지구본에서 깃발로 한 지역을 표시한다. 지구의 자전으로 그 깃발이 빛(태양)쪽으로 움직이면 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고 사람들은 학교에 가고, 도시를 이동하며 활동한다. 깃발이 어둠속에 있으면, 밤의 도시 모습을 보여준다. 깃발로 표시하지 않은, 빛이 있는 곳의 한 지역을 가리키면 - 아마도 중국을 가리키면서 아시아 지역을 통칭하는 듯하다 - 사람들이 한창 일을 하는 밭의 모습이 나온다. 작가는 1940년대에 제작된 영상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당시의 서구가 지니고 있던 세계관(아시아보다 우월한 서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Len Lye, <Swinging the Lambeth Walk>(1939)

 

 

한편 스크래치는 추상 애니메이션의 기법으로도 활용되었다. 대표적으로는 렌 라이(Len Lye)의 작품을 들 수 있다. <Swinging the Lambeth Walk>(1939)의 경우 필름 위에 직접 스크래치를 내고, 채색하였으며 1939년에 런던에서 유행하던 스윙 재즈곡인 "The Lambeth Walk"에 맞춰 이미지들의 리듬감을 만든다. 이미지의 움직임은 노래와 함께 더욱 역동적으로 전달된다.

 

 

 

 

 

 

 

 

 

 

Afterimage

         of cinema

© 2014 by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the Arts. Trans-screen workshop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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